[모션 미디어와 정보 제공 모션(1)] 인공물의 모션과 지능

게재월 | 2009 - 12 조회1038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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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본고에서는 지능에서 행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논한다. 우선 인공지능과 신체성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정보의 부분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기존의 신체성을 경시한 인공지능에는 프레임 문제와 기호접지 문제라는 난점이 생겨 신체성을 중시한 현재의 인공지능은 그러한 의문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인간은 신체를 갖고 행동할 수 있는 컴퓨터, 로봇, 인공물과 잘 커뮤니케이션할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과 신체성


인공지능이란 ‘컴퓨터를 인간과 같이 지적으로 만드는 것’ 혹은 ‘컴퓨터를 도구로 하여 (인간의) 지능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컴퓨터가 발명된 직후인 1950년대부터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최초 연구가 Shannon과 Turing에 의한 컴퓨터 체스라는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듯 초기의 인공지능 연구는 지능을 신체와 분리한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당시의 인공지능은 지능을 신체와는 관계가 없는 것 혹은 관계가 희박한 것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는 명확한 사상에 기초하여 지능을 신체와 분리하지 않는다. 현재의 인공지능에서는 지능의 본질은 감각, 사고, 행동이라는 3가지 요소가 루프를 이루고 있다고 간주되고 있지만, 감각(화상인식이나 음성인식 등에 해당)과 행동(로봇 실제 기기에 해당) 요소의 부분은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실현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이른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고의 요소만을 분리하여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 연구자는 철학자나 심리학자 등과 달리 명확한 사상에 기초하여 연구하는 경향은 약하다. 인공적으로 지능을 실현할 수 있기만 하다면 방법론은 상관없는 것이다. 어쨌든 초기의 인공지능은, 그리고 현재의 인공지능의 일부는 지능은 신체와는 분리된 사고만을 대상으로 해 왔던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자가 모두 일관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개척자인 Simon과 Newell은 물리 기호 가설(physical symbol hypothesis)이라는 개념을 제창했다. 이 개념은 한마디로 말하면 ‘지능의 운영은 모두 기호로 써 내려갈 수 있다’라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기초하면 ‘기호 처리에 의해 지능은 실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게 된다. 즉, 컴퓨터상에 소프트웨어로서 프로그램을 기록함으로써 (원리적으로는) 지능은 인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인공지능 연구의 오랜 기간의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 왔다. 전술했듯이 많은 경우에는 암묵적인 것이지만 이 전제에 서서 진행되어 왔다. 인공 기능은 인간 지능의 모방이라는 요원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혹은 잘 실현할 수 있었던 부분은 인공지능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예를 들면 수식 처리는 인공지능으로서 연구되어 왔지만, 능숙하게 되고 나서는 제외되었다) 줄곧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있다(인공 기능 비판 철학자들은 인공 기능 연구자는 달에 가기 위해 친근한 나무를 타고 달에 가까이 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고들 주장한다). 확실히 현재의 인공지능의 도달점은 인간이라는 목표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지적이라고 말해졌던 것 중 몇 가지는 컴퓨터로도 실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던 컴퓨터 체스도 약 50년을 경과해 1997년에 인간 세계 챔피언에게 이기는 목표를 달성했다. 체스에 강해지려면 그 나름의 지능이 필요하며, 체스에 강한 사람은 머리가 좋다고 많은 사람이 믿고 있기 때문에 물리 기호가설 하에서도 신체를 갖지 않은 컴퓨터라도 지능의 적어도 일부는 실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체스의 예와 같이 지능의 일부는 컴퓨터로 실현할 수 있었지만, 지능의 다른 대부분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체스 전문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쉬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익스퍼트 시스템(전문가)이라는 명칭에서 잘 나타나듯이 의료나 법률 등의 전문적인 지식은 컴퓨터로 다루기 쉽다. 이러한 전문지식은 인간도 상당히 나이가 들어서 배우므로 기호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의 개척자 중 한사람인 Minsky는 가장 실현이 어려운 것은 4, 5세 어린이의 지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확실히 그들이 무관심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컴퓨터는 거의 할 수 없다. 물리 기호 가설이 원리적으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물론 나와 있지 않지만 기존의 인공지능 접근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음은알 수 있다.

한편에서, 어떤 구체적인 지적 과제를 달성하는 데 신체가 필요한지 여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다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체스는 쉬운 과제이므로 신체 없이 컴퓨터로도 인간을 초월할 수 있었다고 단순히 총괄해 버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신체성에 기초한 암묵지의 중요성을 지적해 왔던 현상학의 Polanyi나 Merleau-Ponty는 체스는 감성을 가진 인간만이 강해진다고 생각해 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신체가 없는 컴퓨터에는 감성이 없기 때문에 컴퓨터는 체스에 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과 동일한 주장은(아직 컴퓨터 체스가 약했던 시점에서는) 많은 사람이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장기에 대해서도 극히 최근까지 동일한 주장이 이루어져 왔다. 체스는 그 후 신체를 갖지 않은 컴퓨터라도 강해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지능 가운데 어떤 부분에 신체가 필요하며 어떤 부분은 불필요한지 아직 잘 알려져 있지않다. 지금은 신체성은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있는 과제라도 체스와 같이 장래에 불필요하다고 이해되고 있을지 모른다. 장기 등은 신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축구와 같이 절대로 신체가 필요한 과제도 존재하지만, 필요한지 여부를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체스와 같이 부분적인 과제는 잘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인공지능의 개념을 버리고 신체성을 중시하는 입장이 주류가 되어 왔다. 신체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인공지능을 표방하는 연구자의 일부는 기존의 인공지능을 GOFAI(Good Old-Fashoned Artificial Intelligence ‘오래되고 좋은 인공지능’)이라 부르며 비판하고 있다. 주체(인간 혹은 컴퓨터) 입장에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잘하는 것이 지능의 기능이며,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해 기능을 하기 위한 신체가 필요하다고 이해되어 왔다. 로봇 연구가 진보되어 신체를 가진 컴퓨터, 즉 지능 로봇을 실제로 다룰 수 있는 환경이 된 점도 크다. 체스 대신에 축구를 인공지능 연구의 예제로 한(robocup) 것도 그 흐름에 있다.


정보의 부분성과 신체성


정보의 부분성이란 인지 주체(인간, 컴퓨터 혹은 로봇)가 그 행위나 생존에 관계되는 정보를 부분적으로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고 손을 뻗어 닿는 범위도 한정되어 있으며, 추론 처리 스피드도 한정되어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지식의 양도 한정되어 있어 (가령 인터넷에서 전 세계의 정보에 원리적으로는 액세스 가능하다고 해도) 액세스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한정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은 전 세계에 있는 막대한 정보를 모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인간뿐 아니라 컴퓨터와 로봇에도(다소 정도의 차는 있지만)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정보의 부분성의 개념은 지능을 생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지만, 인공지능 연구의 초기에는 경시되어 왔다.

정보의 부분성에는 2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1) 기억의 부분성

모든 정보를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처리의 부분성

(허용할 수 있는 시간 내에) 정보 처리를 모두 할 수는 없다. 

이것과 함께 신체성과 관계가 있다. 신체가 (크기이든 능력이든) 유한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성이 생긴다. 제3자의 시점에서는 이러한 두 종류의 부분성을 구별하는 것은 특히 유효하지만, 정보의 부분성에 대응하고 있는 인간 입장에서는 반드시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수학 시험 중간에 풀리지않아 곤란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푸는 데 필요한 정리가 무엇인지 몰라 풀 수 없는지(기술의 부분성에 해당한다), 필요한 정리는 전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몰라서 풀 수 없는지(처리의 부분성에 해당한다) 고민하고 있는 본인은 모르는 것이다.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그 한정된 능력으로도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양한 능력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감정, 감성, 싫고 좋은 등(현 시점에서는 컴퓨터에는 없다) 인간 특유의 능력과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막대한 정보를 전부 처리하는 것이 가령 가능하다고 하면 정석적인 방법으로 답을 구할 수 있겠지만, 정보의 부분성 때문에 그것은 무리이므로 정석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답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긴 시간을 걸려 정보를 처리하여 최선의 답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경우(체스, 장기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에는 그다지 별로 없다. 대부분의 경우는 단시간에 최선은 아니더라도 허용할 수 있는 합격점의 답을 얻는 것이 더중요하다. 예를 들면, 오늘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1시간이나 생각하여 정답을 얻었다면 점심이 끝나 버린다. 라면이든 카레든 적당히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선택하거나(직감으로 결정한다), 명확한 근거 없이 복수의 후보로부터 선택한다(좋아하는 것으로 선택한다). 정석적인 정보처리와 비교하면 이른바 대충의 정보처리에 해당하지만, 이 대충의 정보처리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고도 지능이다(컴퓨터나 로봇은 대충 하는 방법을 모르므로 곤란하다). 정보의 부분성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인간이 신에 비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보의 부분성 때문에 인간은 고도의 지능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프레임 문제


기존의 인공지능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프레임 문제(frame problem)이다. 프레임 문제는 처음에 McCarthy와 Hayes에 의해 1969년에 제창되었다. 그들의 문제 의식은 ‘어떤 행동에 의해 변화하지 않는 것을 일일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기술하는 것은 힘들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원 논문에서는 A 씨가 B 씨에게 전화를 하는 예가 있다. A 씨는 B 씨에게 전화를 하려고 전화번호부에서 B 씨의 번호를 찾고, 그 번호로 전화를 하는 일련의 행동을 생각한다. 이것을 논리로 단순하게 다루려고 하면 각각의 동작에 의해 무엇이 변화하는 지를 명시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A 씨가 B 씨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고 생각해도 B 씨의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는다’, ‘A 씨가 전화번호부를 사용해도 B 씨의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는다’, ‘A 씨가 B 씨에게 전화를 걸어도 B 씨의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는다’라고 하는 인간 입장에서 완전히 명백한 말을 줄지어 기술하게 된다. 이것은 참을 수 없으므로 뭔가 하려고 하는 것이 프레임 문제의 발단이다.

어떤 동작에 의해 변화하는 것만을 기술하기로 하고, 기술하지 않는(언급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안(案)은 이미 고안되었다. 그러나 전 세계에는 많은 예외가 존재하므로(예를 들면, 접시 위에 놓인 컵을 움직여도 접시는 움직이지 않지만, 접시를 움직이면 컵도 움직인다), 예외를 일일이 기술하려고 하면 동일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프레임 문제는 정보의 부분성과 관계가 깊지만, McCarthy와 Hayes가 말하는 프레임 문제는 전술한 ‘기술의 부분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설령 이런 의미에서의 프레임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또 하나의‘처리의 부분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수 없다.

마츠하라와 하시다는 그러한 입장에서 2개의 정보의 부분성을 대상으로 한 넓은 의미에서의 프레임 문제를 제창하여 ‘일반화 프레임 문제’라고 이름지었다. 일반화 프레임 문제는 철학자인 Dennett가 올바른 프레임 문제의 파악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일반화 프레임 문제는 물론이고 컴퓨터 입장에서는 난제이지만, 인간 입장에서도 어려운 문제로 일반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라’라는 예를 생각해 보자. 이 대사는 부모가 자식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하듯이 손위가 손아래에게 설교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의미하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우며,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보통은 ‘다른사람에게폭력을행사하지않는다’, ‘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깨지 않는다’ 혹은 ‘자신의 실패로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등의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모두 가르칠 수는 없다. 더욱이 무엇이 폐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엄밀하게 알 수 없다. 물리학적으로는 자기 행동의 영향은 광속으로 전파된다. 자신의 행동이 어디서 누구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지를 알 수는 없다. 이 대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어떻게 영향을 주지 않는지 인간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도 일반화 프레임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인간도 일반화 프레임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정석적인 정보 처리를 하려고 해도 정보의 부분성에 의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화 프레임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 않다(고민을 너무 많이 하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생긴다). 인간은 경험을 쌓음으로써 대충의 정보처리가 가능하게 된다. 막대한 정보를 상대하지 않고 일정한 틀 속의 정보만을 상대함으로써 일반화 프레임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해결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인간은 일반화 프레임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이전에는 모의 해결을 하고 있다고 표현해왔다).

한편에서 많은 컴퓨터(로봇)는 일반화 프레임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미리 컴퓨터의 작업 대상을 좁혀 일정한 틀 내의 정보만을 상대하면 끝나게 되기 때문이다. 틀 밖으로 나가면 일반화 프레임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SF 소설에서도 나타나 있다.

컴퓨터도 인간과 같이 일반화 프레임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인공지능의 큰 과제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신체성이 필요하다. 신체성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체성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신체를 가지는 컴퓨터, 즉 로봇을 실제 세계에서 생활하도록 하여 인간과 같이 경험을 쌓아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호 접지 문제


인공지능에서 또 하나의 난제가 기호 접지 문제(symbol grounding problem)이다.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문제의 중요성은 논의되어 왔지만, Harnad가 기호 접지 문제로서 1990년에 지적했다. 컴퓨터 입장에서 현실의 사과와 기호의 사과를 어떻게 결부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프레임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기호 접지 문제로 고민하지 않으므로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실물 사과를 봤을 때의 적색, 잡았을 때의 촉감, 먹었을 때의 달고 신맛 등의 정보를 인간은 실감으로서 알고 있다. 사과라는 기호를 눈으로 봤을 때, 혹은 귀로 들었을 때, 인간은 그 사과의 실감을 사과라는 기호와 적절하게 결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에 사과의 색은 빨갛고, 촉감은 매끄럽고, 맛은 달고 시다는 지식을 아무리 입력해도 그 기호인 사과를 실체의 사과에 접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리 기호 가설에 따르면 현실 세계를 기호화하여 컴퓨터에 입력해 그것을 처리하고, 그 결과의 기호를 현실 세계로 되돌림으로써 인공지능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기호 접지 문제가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컴퓨터가 아무리 기호 처리를 거듭하여 추론해도 그 기호와 현실 세계를 잘 대응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인간과 같은 지능을 컴퓨터가 가질 수 없게 된다.

기호접지문제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로서 파악할 수도 있다. 인간이란 서로 다른 비생물 컴퓨터(로봇)에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알거나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기호 접지 문제도 원리적으로 컴퓨터(로봇)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기계가 생물과 마찬가지로 알거나 의식하거나 할 수 없는 것은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그러기 때문에 기계가 기호 접지 문제를 원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인간은 인간 나름의, 원숭이는 원숭이 나름의 사과를 실감할 수 있듯이 컴퓨터도 컴퓨터 나름으로 사과를 실감할 가능성이 있다. 그 때 필요하게 되는 것이 신체성이다. 사고만 있는 컴퓨터는 기호 접지 문제를 풀 수 없으므로 감각과 행동을 가능케 하는 신체를 가져야 한다.

프레임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신체를 가지는 컴퓨터 즉, 로봇을 실제 세계에서 생활하도록 하여 경험을 쌓게 한다. 작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듯이 실체의 사과를 로봇에게 보여주고 만지게 하여 그것이 사과라고 가르친다. 인간이 실감하는 사과와는 당연히 다를 수 있지만(예를 들면, 인간과 같이 먹으면 달고 시다는 실감은 갖지 못할 것이다), 그 로봇 나름의 사과의 실감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 현재 인공지능의 큰 과제이다.


신체를 가지는 인공지능


기존의 인공지능은 체스 등에서 성과를 올렸지만(지적이라고 생각되는 과제를 컴퓨터로 달성할 수 있었다), 목표로 하는 인간과 비슷한 지능의 인공적인 실현에는 아직 멀었다. 기존의 인공 지능을 기호 처리에 치우친 GOFAI라고 비판하고, 새롭게 행동에 기초한 지능(behavior-based intelligence)을 제창한 것이 Brooks이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사고만을 대상으로 해 왔지만, 지능은 사고뿐 아니라 감각, 사고, 행동 루프가 성립하고 있다고(감각으로 정보를 입수하여 입수한 정보에 기초하여 사고하고, 사고에 기초하여 행동하며, 행동한 결과를 감각으로 다시 인식하는 형태로 루프한다) 주장했다.

감각과 행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가져야 하므로 이 새로운 인공지능은 필연적으로(신체를 갖지 않은 컴퓨터는 아니다) 로봇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Brooks는 행동을 통해 환경과 적합한 것이 지능이라고 생각하고 바퀴벌레와 같은 벌레 로봇을 개발했다. 이 벌레 로봇은 마음대로 움직이고 어떤 것에 닿으면 피하여 방향을 바꾼다. 고도의 능력은 불가능하지만, 그 환경에서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다’. 긴 시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적절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허용할 수 있는 답을 계속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지능이라고 한다면, 벌레 로봇은 기존의 인공지능에는 없는 지능을 가지게 된다.

로봇이라면 프레임 문제나 기호 접지 문제에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에서 Brooks 제창 이후의 인공지능은‘행동에 기초한 인공지능’의 개념이 주류가 되었다. 패턴 인식이나 로봇 기술이 진행되어 감각과 행동을 사고와 조합시킨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배경도 크다. 우리가 체스 대신에 인공지능 그랜드 첼린지로서 축구를 예로 들어 RoboCup을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흐름에 기초하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체성을 가지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은 인공적으로 지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겠지만, 그 개념을 채택했다고 하여 바로 인공적으로 지능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rooks는 바퀴벌레 로봇에서(생물의 진화를 밟는 형태) 조금씩 발전한 로봇을 개발하여 인간을 지향하면 된다고 하지만, 바퀴벌레에서 인간까지의 길은 멀다(바퀴벌레에서 인간까지 진화할 때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린다).

지능의 정의로서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가 유명하지만, 이 정의는 신체가 없는 컴퓨터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입출력은 키보드와 디스플레이에 한정되어 있다. 현재의 개념에는 맞지 않는다. 최근 몇 명의 연구자가 말하고 있듯이 한동안 관계를 맺어 로봇이라는 것을 숨길 수 있는(인간 행세를 지속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인공지능의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정의를‘우주소년 아톰 테스트’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러한 우주소년 아톰을 실현하려면 이미 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아이들에 해당하는 로봇을 실제 세계에서 생활시켜 성장시키는 방법론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맺음말


본고에서는 지능에서 신체성이 중요함을 설명했다. 인공적으로 지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신체를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인간이 지능을 발휘하기(타인을 포함한 환경과 잘 어울려 나간다) 위해서도 신체성이 중요하다. 인간끼리 대면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신체성이 동반되고 있지만, 편지, 전화, 전자메일, 챠트 등은 신체성이 어느 정도 결여되어 있으므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결여된 신체성을 보완해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시도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전자메일에서의 그림 문자는 그 중 하나이다).

전술했듯이 인간과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는 키보드와 디스플레이라는 매우 빈약한 것에 한정되어 왔다. 이러한 빈약한 인터페이스로는 인간은 컴퓨터와 잘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다. 컴퓨터도 인간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도 컴퓨터를 이해할 수 없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컴퓨터에 다는 것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고안이지만, 인간이 컴퓨터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고안도 필요하다.

인간은 인간과 대할 때에나 컴퓨터를 대할 때 신체성을 이용해 상대를 이해하고 있다. ‘ 인공물의 모션’에 의해 인간은 인공물을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안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松原仁

공립하코다테미래대학시스템 정보과학부


本記事는 日本「(社)計測自動制御學會」가 發行하는「計測と制御」誌와의 著作權協定에 依據하여 提供받은 資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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